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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8

편백 ​ ​ 편백나무엔 피톤치드가 많다고 한다. 이나무의 용도는 무엇일까? 병든 사람도 진정 낫게 한다는 말인가? ​ 이나무에 이렇게 고기를 쪄 먹어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나무에 바라는 것은 조성대대로 불을 지피기도 하고 또한 어둠을 밝혀 주기도 살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말 그대로 모든것을 주었던 것이다. 주기만 하는 나무 우린 주기만 하는 그 누군가가 있던가? 2018. 7. 8.
옥수수 수염차 ​ 아마도 그때는 옥수수 수염을 모두 버렸을 때가 있다. 그 당시 우리는 삼복 더위를 피해 양은 냄비에 옥수수 수염을 넣고 물을 팔팔 끓였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자라지 않은 여러가지의 형편을 들으며 그 시절 우리는 풍족하지 않은 살림과 그 형편으로 서로의 허기를 채워주었던 것 같다. 때로는 아픈 마음으로 때론 즐거운 마음으로만 우리는 그렇게 더운 여름을 덥게 지냈던것 같다. 지금은 아무것도 부러울게 없던 때라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게 시감은 추억을 먹고 추억은 또한 삶과 너무도 밀접하게 우리와 사람들을 연결했던 것 겉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과 삶을 공유하며 살았었던 것이다. 지금은 남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궁핍이 생활이었고 부족해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던 그 때 모든 부러움퍼럼 비칠 수 있.. 2018. 7. 6.
약사리고개 나는 이 고개마루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보냈다. 언덕에서 아마도 그 외롭던 겨울을 보냈다. 아마도 무지 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탄을 때던 때였었다. 왜 이렇게 고갯마루에서 차갑던 바람을 그 세찬 언덕위의 바람을 맞았던 그 해겨울 기억이 난다. 내 어머니가 못내 그립고 보고싶던 그때 말이다. 항상 어머니란 말을 그 등대 역할을 하던 나의 단어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 한테 전화도 드려야 하는데 어머니에게 뜨스한 말 한마디 전화 한통화 못드린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커다란 힘이었다. 커다란 방패도 돼고 커다란 등불도 돼고 그때는 이 골목길이 왜 그리 추웠는지 이제야 말할 수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얼마나 말이 그리웠든지 그 해겨울은 혹독했던 것 같다. 방안에 비키니 옷장 식.. 2018. 7. 6.
태풍 ​​​ 태풍을 맞이하면서 나는 가끔 두렵다. 이여름 태풍이 우리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할건지 태풍이 계속 비껴간다 라는 예보를 우리는 어찌 한다는 말인가? 기상청 예보관이 진땀을 빼는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우리는 할게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기달린 뿐인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이 비를 피할수 있을 뿐이다. 201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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