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다큐멘터리

by 링마이벨 2023. 11. 16.
반응형

내일 눈이 온다고 하는 2023년 11월 16일이다. 

인류의 위기는 어디로 오는가 미술은,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이야기 miracle hotel ~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이야기 기준이 돼는 이야기

메두사호의 뗏목  1816년 7월 2일의 참상. 

1819년 파리 살롱전은 그림 한 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역사나 신화 속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조난사건을 다룬 작품 때문이었다. 메두사호의 비극을 생생하고 비참하게 그려낸 이 그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대체 메두사호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16년 7월 2일 아프리카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 해군 군함 메두사호는 암초에 걸려 난파했다. 400명을 태운 배의 선장은 쇼마레라는 이름의 해군 장교였다. 경험도 없고 무능했지만 왕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임명된 낙하산 인사였다. 게다가 그는 돈을 받고 정원 외 사람을 더 태웠다. 배가 침몰하기 전 승객들은 급히 구명보트에 올랐다.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 보트에 타지 못한 나머지 149명은 뗏목을 만들어야 했다. 보급품이 없는 상황에서 폭풍까지 만난 뗏목은 생지옥이 되었다. 기아, 탈수, 질병, 난동, 광기, 살인, 자살, 급기야 식인 행위까지 벌어졌다. 13일의 표류 끝에 구조된 생존자는 15명뿐이었다. 27세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호 사건을 화폭에 담아 영원히 기록하고자 했다. 그는 생존자들이 구조되던 날을 재현했다. 멀리 구조선이 보이자 뗏목 앞쪽 사람들은 희망에 차서 수건을 힘껏 흔들고 있다. 반면 시신이 있는 뗏목 뒤쪽은 절망으로 가득하다. 무릎 위에 아들 시신을 올려놓은 노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모습이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생존자들을 인터뷰하고, 목수를 고용해 뗏목 모형도 만들었고, 시체를 관찰하기 위해 시신 안치소까지 찾았다. 철저한 준비를 거쳐 제작된 그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림이 공개되자 분노와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사건을 은폐하려던 왕과 정부 관료들은 당혹스러웠다. 200년 전 그림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건, 부패한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는 결국 메두사호처럼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메두사호라니? 

거대한 그림의 크기가 ISSUE가 있다. 거대한 그림의 영웅적인 것과는 달리 큰 SIZE에 평범한 사람이 그 그림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던 시대에서 한 평범한 인간이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기는 힘들었었다. 그림은 실제사건을 다루고 그 피해자들이 루브르 대형 박물관의 중앙에 배이가 돼었던 것이다. 전통에 반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영웅주의와 위대한 특성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1800년경 자신만의 주제를 찾아나가는 주요한 움직임이 돼었다. 후원자를 위한 작업이 아닌 그냥 그림속의 진실을 담고자 했던 것이다. 기존 미술의 규칙을 깼던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돼새기면서 그렸던 것이다. 

실재로 아름다운 몸이여야 하며 완벽한 몸이어야 했다. 그림에서 그린 그림은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 나폴레옹 대관식의 그림은 실제보다도 더 과장돼어 있는 것이다. 그림은 의뢰인의 의도에 맞는 정치적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시도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역사의 흐름은 얼마나 도도한가? 혁명의 진실을 그리려근 그들의 노력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결국은 자유를 위해서 시민들은 일어서지만 사실 체제가 바뀌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부르조아는 더욱더 굳건하게 자기의 지위와 부를 늘린다는 것이다. 체제가 불안하면 그들은 lotto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 불안함이 그들의 부를 기하 급수적으로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왜 그럴까? 돈은 전쟁에 더 필요하고 위기시에는 몇배의 프리미엄으로 불려지는 역할을 하고 고리대금업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재규의 시도로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할 즈음 전두환이 그 시기를 움쳤던 것처럼 우리의 역사에서 순수의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스페인 내전도 비슷한 상황익 프랑스 혁명 또한 그렇다고 본다. 끊임없이 시계를 돌리지 않으려는 보수와 진보의 충돌은 끊임없이 지금을 유지하는 세력은 전쟁중에도 후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