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sm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의 역사에서 캐즘은 인간의 서두름과 성급함이 만들어냄 그 격차의 시간이 만들어낸 틈이더. 왜 우린 서두르게 돼는 것일까? 섯부른 가능성과 그 기대가 만들어낸 그 욕심이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인 것이다. 흔적보다는 오히려 욕망의 찌꺼기 욕심의 댓가
특히 캐즘은 기술의 영역에서 왕왕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흔적들이 문명을 빠르게 발전 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그 기대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어내 여러 현실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생각한다. 결국 사춘기라고 판단이 된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그 막연하고 모호함 말이다. 현실인식 아님 주제파악 그러다가 다시 도약하는 것이다. 그 내포된 가능성으로 그 가능성의 확대인 것이다. 그 빈자리가 빈 공간이 난 캐즘처럼 보인다. 지금의 대한민국 캐즘의 정중앙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앙 맬 좌우만 외쳐대는 사람들, 나만 나만 제외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어찌보면 크레바스일수도 있지만 나는 희망이라는 쪽에 약간 무게를 두고 싶어서이다.
유난히 급한 사람들 개발과 독재 두개사이를 넘나들면서 아직도 그 언저리에서 아픔을 가진 만큼 그보다 더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역사를 보면서 혹시 후진국 컴플렉스에 빠져 있지 않나 생각을 해 보지만 미국의 트럼프를 그들의 독립후 240-50년 되는 그들의 민주주의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이 내세운 솔직함과 인기의 영합이 엘리트주의를 표방하고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우리의 역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 글의 요지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다름아니라 캐즘의 깊고 오래가는 역사와 그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한다면 깊고 오래가는 이 갈등구조는 결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얼마나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의 여부와 얼마나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문화적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원동력은 다름아닌 우리가 역사를 통해 실행을 통한 만족감을 경험했느냐는 그 유무에 관련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CHASM이 문제가 아닌 복원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 역량과 힘의 세기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다. 연인사이에서 실연을 당할지언정 얼마나 툭툭 털고 일어날지에 관련된 사항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경험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는 그 원초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결국이 실행이 답이었던 것이다. 뭐든지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