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1792년 1월 21일 루이16세 처형되다.

by 링마이벨 2023. 10. 24.
반응형

프랑스는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았을까? 그동안 내려온 국왕이라는 신성불가침의 무한대 권력과 권한을 가졌던 루이16세의 처형은 1793년 1월 14일 국왕의 유죄여부로 국민공회의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유죄로 결정되었고 1월 16일 저녁에 시작되어 24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끝없는 개별 호명식 투표끝에 387대 334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유럽을 경악케 했다. 

만약 우리의 동학혁명이 성공하여 고종을 폐위시키고 고종을 몰아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발전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딱 100년 이후의 동학이 조선에서 일어났던 이유이다. 만약 집권층의 그 누군가와 어떤 세력과 결탁이 되어 대중적인 지지가 국가의 어떤 세력과 이해관계가 맞어 떨어졌더라면 우리의 동학은 더욱더 커다란 힘을 얻었을 것이다. 어차피 일본을 끌어들인 세력들 그 개화파가 일본이 아닌 자주국방과 자주적 독립에 사상적 기초가 있었더라면 그 사대의 예를 가진 보수적 우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더욱더 강한 대한민국으로 해방되고 자주국가의 기틀을 가졌을 텐데...혁명이 성공할려면 최소한 정치적 동맹이 존재하여야 하는데 프랑스혁명은 신흥부르주아와 법이라는 우군이 있었는데 동학은 정부 전체를 적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내부의 어떤 우호적인 권력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권이 떨어지고 왕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때 프랑스 민족의 감정은 복잡했을테지만 그동안 권력이 자행해온 수많은 부조리와 부정으로 인해서 권력은 소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그 사대의 잔재는 수천년을 거쳐 오늘까지도 지속되지 않나 싶다. 권력이라는 것에 대항해 본적 없고 권력에 납작 업드려 그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기 때문이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권력자들이 많은 나라,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나라가 내가 사는 이 나라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권력에 조아리고 비굴하게 살아온 내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 오로시 삶을 영위하는 것외 어떤 의미도 없이 굴욕당하고 헐벗고 힘들게 살었던 내 조상들앞에 떳떳하게 한 번 외쳐본 적도 없는 경험들이 이리 가난하고 헐벗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권력자와 공포정치의 단두대 이 인류의 발명품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인권을 위한 기구로 자유와 혁명의 기구로 쓰였으니 말이다. 중세 수도원이 모든 형벌의 백과사전을 제조하였듯이 피의 숙청은 끊임없는 피를 불렀다.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권력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였지만 집착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권력은 중독과 금단현상을 만들어 주변을 피로 얼룩지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