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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군 이연 신도비

링마이벨 2025. 1. 2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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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군 이연은 누구지? 아무런 생각 없이 화산군 이연 신도비(花山君 李渷 神道碑)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조선시대 영조 23년(1747) 화산군의 아들인 낙창군이 세운 비석이다. 1980년 6월 11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아들이 아버지 신도비구나! 잘 가시라고 염원하는 비라는 건가!

화산군의 자는 여원, 호는 자이당으로 선조의 7남 인성군 이공의 손자이다. 부친은 해원군 이건이고 모친은 풍산 심씨인데, 해원군의 동생 해양군 이희와 광산 김씨 사이에 후사가 없자 그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효성으로 섬겼고, 양자로 들어간 뒤에도 두 집을 오가며 양가 부모를 지극히 섬겼다고 한다. 현종 2년 화산부정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생부의 상을 당해서는 삼 년을 하루같이 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아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였으며, 탈상 후에도 애모함이 지극하여 제사 때 손수 제기를 씻고 초상 때처럼 애통해 하여 모두들 그의 효성에 탄복했다고 한다.
현종 15년 왕이 승하했을 때 혼전의 향관에 제수되었고, 그 노고로 명선대부에 올라 도정에 제수되었다. 숙종 6년 인경왕후가 승하하자 다시 혼전 향관에 제수되었는데, 삼 년을 마치기 전 양부의 상을 당하였다. 탈상 후 왕은 특별히 품계를 올려주고 화산군에 봉하였다. 숙종 13년 생모의 상을 당해서도 생부의 상 때처럼 비통해 하였고, 두 아우와 함께 시묘하기를 밤낮으로 통곡하고 묘를 맴돌며 차마 내려오지 못하여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탈상 후 도총부 부총관에 제수되었다. 숙종 26년 신경통을 앓아 여러 해를 끌다가 2년 뒤 윤6월 11일 향년 56세로 사망하였다. 그 해 8월 경기도 양주 가좌동의 선영 옆에 안장되었다. 영조 2년( 아들 낙창군 이당의 공로로 현록대부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증직되었고, 영조 22년 경연관 송인명의 건의로 특별히 효간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자손으로는 밀양 박씨 사이의 밀창군 이직과 상주 황씨 사이의 낙창군 이당·능창군 이숙의 삼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영조의 총애를 받아 정1품에 올랐다.

효성이ㅜ그야말로 지극한 아버지를 아들이 그리는 비구먼! 죽을 정도로 여위었던 말이 대단했구나! 이런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이 내일이면 설날인데 어머니가 생각나네!

이 동네 조금 있으면 재개발 하는데 이 무덤은 어찌 돼는지? 나의 효성은 효는 존재조차 모르겠네! 그 애틋함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생활이란 이유로 살아가기 힘들고 여러가지 핑계로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 가득험니다.

평상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고른게 대개 이렇습니다.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나열입니다. 대개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이 여러가지구나! 칠성사이다, 떠먹는 요구르트, 속청, 활명수 항상 소화에 고생하셨던 어머니의 필수 아이템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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