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제주 & 여순[김용옥 도올]

링마이벨 2018. 11. 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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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주도 1947년 3.1운동 기념식때 3만명이 모여서 대중집회를 하는데 기마병이 애를 말밥굽으로 치었는데 그거에 대해서 민중이 항거했는데 발포해서 여자애 엄마를 죽이는데 데모를 하니까 미군정은 제주 인민들을 마구 짓밟았고 제주도민을 짓밟는데 서북청년단이 와서 제주시민을 짓밟았다. 미국에서 잘 쉬었던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이승만씨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정치가 뭔지를 몰랐었던 사람이다. 매점매석 하는 사람들이 쌀을 사면서 미군정이 미곡수집령으로 모든 농민의 쌀을 1/5 ~1/10가격으로 공출한 것이다. 쌀을 강탈해놈들이 미국놈들이었든 것이다. 그래서 대구 폭동 1946년 10월 주동한 사람이 박상희 엿던 것이다. 구미경찰서에서 말렸는데 뒤에서 총을 쏴서 박상희를 죽였던 것이다. 김익렬 중령의 후임으로 서북청년단이 후임으로 미군이 쌀을 강탈해서 이러한 반대세력이 생긴것이다. 박진경 중령놈이 막사에서 부하가 깬것을 죽였다. 박진경을 죽인 사건이 문상길 손선호 하사관이 이 박진경중령이 우리나라에 독립을 반대하는 제주 30만명을 모두 죽여도 좋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문상길 사형집행을 하는날 우리민족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어디에서든 볼수있다. 오늘날의 우리역사가 엄청난 것은 이러이러한 사람이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존재했다는 것이다. 숙군사업을 시작해쓴데 해방후 미국과 소련의 후견인 정치가 잘 된것이 아니고 이승만이 나온 동대문구 출신이기는 한데 이승만이 한 행동거지중에 가장 잘한거는 자국민을 죽이고 좌익과 우익으로 그리고, 정권을 목표로 군인을 경찰로 해서 50년간 반목과 시기로 평생 갈등하게 온 것이다. 

부용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우리의 삶처럼 비극을 가진나라가 있을까? 우리의 역사는 언제나 민낯으로 대할 수 있을까? 근대사에 이르러 해방과 더불어 미국이 얼마나 나쁜짓을 했는지는 우리는 삶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노래를 빨치산으로 둔갑시킨 명백한 이야기를 언제 풀어볼수 있을까? 이승만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다. 이런사람이 만약 우리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었을 것을... 제주도는 3만명을 추산 여순에 대략 1만5천명을 

박기동 시인이 안성현 작곡가를 만나 부용산을 내려오면서 동생의 죽음을 노래했던 노래이다. 해방의 경제수탈을 주도한 미국이라는 점령군이 한국민을 대하는 태도는 점령지국가에 준하는 우리국민을 일본에 준하는 대우를 했다는 것이다. 

문상길중위가 박진경 중위를 암살하고 난 후에 직속상관을 죽이고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죽인것에 대해 민족적인 양심으로 머리아프지 마라. "인간의 법정은 공정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 공평하다." 문상길 중위의 나이가 22살 총살을 당하면서도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아래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 군대가 돼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우리역사가 이런사람들이 굽이굽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겁니다. 이승만은 군대가 빨갱이라고 단정하고 신탁통치를 찬성하면 빨갱이고 반대하면 신탁통치   trustship 균형을 요하는 guardianship 을 하는데 어는 일정기간동안 후견정치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찬탁인것이다. 미곡수집령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전혀 정치에 대한 발란스나 전혀 의식도 없었던 미군이 첫번째 나라를 망가뜨린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이다. 이때 해방후에 미국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역사를 주도한 얼빵 들인것이다. 14연대 2천명을 결속시킨 힘은 육사동기라는 것이다. 여수군은 향토사단으로 지역민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경찰과의 갈등이 너무나도 극심했다. 미군이 친일경찰을 미군정을 만들었따. 경찰은 친일경찰의 수괴자였고 경찰이 보기에 군인은 모두 빨갱이 였다고 생각했다. 경찰과 군대의 갈등이 엄청나게 심했다. 곪아터질대로 터진 14연대의 항명이 이루어지자 마자 전체 여순시민이 동조했고 경찰과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고 볼수 있다. 전국이 인민위원회로 결성돼다 보니 이 인민위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조직이 경찰이었던 것도 친일 경찰이었던 것이다. 군대는 모두 빨갱이로 볼수 있었다.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것이 그 당시 경찰서는 폭력단체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14연대 봉기시 경찰서를 아작낸 것이었던 것이었네여! 

14연대 호소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48년 10월24일 14연대는 오늘까지 우리에게 해결이 안된 문제들이네여!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라는데 우리가 웰컴하고 찬동하는 역사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바라는 역사 주체의식이 발현된 것이 없는듯 하다. 여수를 육해공군이 군대가 출동해 자국민을 불바다로 만든 역사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14연대는 여수에 없었는데 군대가 여수점령을 못했던 이유는 여수 인민들이 항거를 했던 이유이기 때문이다. 14연대는 지역 경찰하고만 교전했는데 점령하려는 국군은 모든 국민을 암살하였던 것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빠라 뿌리고 손가락 총으로 수없는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부역자 색출을 했다는데 우리나라에 현대사에 부역은 역모에 가담한 사람들 빨갱이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해 총을들었던 자 손가락에 기름때가 묻었던 자 군용빤스를 입었던 자 어린아이까지도 죽이라고 명령햇던 사람이 바로 이승만 이었던 것이다. 쓰레기 

인민위원회에서 군용양말을 신었던 사람, 스포츠 머리 군인의 흔적이었던 모든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이 가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적었던 것이다. 지역민을 빨갱이로 전라도를 빨갱이로 자리잡게 만든 것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든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미국가서 호의호의식하고 여기저기 독립자금을 개인으로 쓰다가 이제는 대통령까지 거치며 겨레와 민족을 하나의 출세도구로 생각해 보니 후세에 비슷한 이가 있었던 것도 역사의 단죄없이 그날그날 살다보니 역사를 재방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네...자국민을 죽여라 라는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하나없네...군대를 자기의 파쇼 정권의 하수로 만들어버림. 보도연맹까정 이승만은 이이가 인간인가? 이승만의 학살은 킬링필드 이야기가 아닌지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참혹한 역사인지, 여순이라는 것은 민중의 항쟁이었던이었지 그 아무것도 아닌것이었다. 왜곡돼어온 70년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70년의 속박을 통해서 이제서야 민주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것이다. 세계의 역사의 주체에서 하는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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