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sychological

잡일만 계속...이직해야 할까요

by 링마이벨 2021. 8. 8.
반응형

잡일만 계속 사실 일에는 잡일과 표나는 일로 분리를 합니다. 아니면 잡일과 내커리어에 도움이 돼는일 다 제끼고 아마도 나를 빛나게 하는 일과 나의 자존감을 상처주는 일 이렇게 분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미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은 사실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일일겁니다.

만약 이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 사실 이러한 생각으로 이직을 하고 있다면 뿌리는 사람이 게입돼 있는것이 아닐까요? 혹 이사람에게는 나의 직장의 운명을 아니 내 길을 의사결정할 수 있는 someone이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이미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피해를 끼치고 심지어 현재의 내가 하는 모든 acting들이 심지어 나에게 도움도 안돼는 나를 무시하고 나의 존재감에 피해를 주고 있고 더구나 내가 하는 모든 업무적 고려들도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잡일만 지속하기 때문에 어떤것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모든 사항들이 사람이라는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일이 어떤일이냐는 것에 집중해 생각해 보고 도저히 이 허탈감과 상실감이 사람이라면 부서를 함 옮겨달라고 오히려 적극적인 해결을 위해 회사를 위해 도움을 요청해 보고 그러한 실행을 하기 어려움이 있다면 너무나 작아서 그리고 그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면 사실은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른 접근을 해보자면 우리가 직장에서 인사를 결정하는 system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살아온 방식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그 background를 우리는 요즘은 수박껍데기에 비유할 수 잇다고 본다. 

 겉은 시퍼러둥둥한데 안은 저렇게 새빨갛게 너구나 있기도 없기도 하지만 씨를 가지고 있기도 씨가 없기도 하다. 우리는 잘라보지 않고 안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Personel이라는 영역은 인사팀이 제 아무리 점을 보고 얼굴에서 풍기는 모든 것을 확인하고 사람을 뽑느다. SPEC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 잘라보고 살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반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사는 겉모습에 열중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어떤 가능성을 어떤 이력서와 어떤 다른 능력을 지닌것에는 사실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왜냐면 인간의 가능성이란 외부적으로 그 변화에 대한 RISK의 여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인사팀의 업무에 매몰돼다 보면 정량적인것에 몰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잘하고 좋은 SPEC을 가진이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렇기에 아마도 만약 당신이 이직을 꿈꾸고 이직을 했지만 아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 변화의 만족또한 당신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떤 목표의식을 갖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다면 이미 결과론적으로 느끼고 행동까지 결심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하는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왜냐면 그것도 패배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두번째 우리의 요즘일은 스펙이 통일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에 맞는 공식처럼 스펙을 장착한다. 마치 전자제품처럼 획일화 돼어있고 심지어 피로감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단조로움 규격화가 결국은 심지어 그 피로감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외적인 변화 그 뒤에 있는 피로감을 이야기 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왜 다양성이라는 부분이 점점 디지털화 고사양 스펙이 돼면서 자동차, 핸드폰, 모든 디바이스 교환주기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한차를 평생 쓰면서 삶을 20~30년 사용했던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3년을 교환주기로 새차를 사고 소모품 교체가 오면 바로 차를 바꿔 버리는 것이다. 핸드폰은 1년, 그 와중에 나의 만족도를 주는 제품이라면 나의 삶의 가치와 재원을 투자해 구매하게 된다. 그것이 명품이고 명품이 오히려 대중화 돼면서 단기간에는 명품이지만 이미 보급율이 확대돼고 누구나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미 명품이 아니게 된다. 아마도 명품회사도 대한민국이 그래서 어려울 것이다. 그 확산속도를 제어할 수 잇는 부분이 가격을 다른 지역 다른곳보다 가격을 더올리고 서비스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애플이 그러하고 모든 명품의 서비스가 유난히 다른지역보다 약해도 우리는 그 물건을 사다보니 호갱소리를 듣는것이다. 남에게는 무료로 주는데 우리는 최소 구매하게 하고 결국 피해로 돌아오지만 그래도 그 물건에 집착하게 돼는 것이다. 만약 단조로움과 획일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이 예전보다 USER나 BE USED 두가지로 파악해 본다면 이런 결론일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고사양 스펙에 대해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뽑을려고 하는데 자꾸 미궁으로 빠지는 이유는 이러한 생각과 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움직이다 보니 코로나 이후 인사가 점점 많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점점더 한사람의 능력으로 인한 전진은 그에게 더욱더 집중하고 매달리게 된다. 초기인사는 스펙이지만 중기로 넘어가면서 사실 인사는 한사람의 능력에 넘 의존하게 돼고 그 한 사람은 Hard carry를 느끼다보니 둘다에 피로한 직장시스템이고 사실 한사람에게 집중돼는 방식으로 점점 그와같은 아니면 그를 서포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스템으로 변화하다 보니 점점더 다양성을 줄어들고 사라지게 된다. 결국은 한사람의 시장 한사람만을 위한 직장이 돼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정부분 지속한 사람들은 사실은 도제 시스템이 형성하게 된다. 무언의 무한의 신뢰가 쌓이게 된다. 사실 인사를 내가 옮겼냐 스카웃제의로 움직였냐는 그래서 큰 차이가 생기게된다. 자발적 실업이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돼는 것이다. 대학의 반수도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을 뒷바침해주고 있고 이 코로나는 아마도 회사를 옮길 수 잇는 천혜의 기회가 돼는 것이다. 미국도 재택을 했지만 미국또한 재택이 다른회사 이직의 기회롤 활용됐다는 것을 최근에 어는 리포트에서 읽은적이 있는데 결국은 누구나 자기 직장에 만족을 갖는 사회풍속은 아마도 과거부터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지속성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은 내가 원하는 카테고리인지 그것부터 먼저 고민해 보고 내가 그것을 위해 냉정히 판단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면 끊임없이 나를 만들고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실 diet와 내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 방법으로 이야기 돼어진다. 내가 먹는 것들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내몸에 있는 독소를 빼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내 체질과 내가 먹는것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은 가끔 내가 좋아하는 면, 밀가루, 탄수화물을 줄이고 좀더 자연의 식품을 통해 비타민 자연적 food를 섭취해주고 잠을 푹자고 외부적인 요인물 단것에 대해서 술을 줄이고 나의 스트레스를 줄 일 수 있다면 과감히 실행하고 내 몸을 최적화해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뭐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싶다. 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탐욕스런 욕심을 줄이고 가끔은 너무 단것을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내몸에서 땀을 내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나를 exercise하고 단련하고 내몸만 내 육체만 철저히 관리하지 말고 내 마음도 단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다 보면 그러한 병행을 할 수 있는 직장 만약 이러한 것을 원천 가로막는 직장이라는 두가지 부류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병행하는 것을 너무 일에서만 찾다보니 너무 많은 해석과 너무 많은 오류가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꽤 오래한 선배로 꼰대지만 가끔 내가 요즘에 집중하는 화두는 꼰대지만 배움에는 꼰대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왜냐하면 나름 몇십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반증도 돼기 때문에...  하지만 금요일 저녁 강남역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면 약속자체를 차주 평일로 미루는 방법도 있지만 가끔 그 혼란함속에서 저녁을 한 사람이라면 그 소중함과 가치가 더욱 있다고 생각하고 지하철을 타던 차를 가져가던 그건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서 판단해 보고 사람을 보는 일 내가 좋아하는 친구,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난 걸어가던 버스를 타고가던 차를 가지고 가던 아니면 아예 약속 자첼를 미루던 그건 판단을 해야 하는 영역이다. 만약 그 사람이 내 삶의 기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내 소중한 사람이라면 약속장소를 변경해도 그를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맬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주 그 다음주 약속을 미루는 것도 좋을 것이고 그리고 최소한 그게 강제의 방식이고 어쩔 수 없다면 과감히 accept하는 것이다. 아마도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