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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자연

by 링마이벨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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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는 복잡한 생애 주기를 거치지만 인류는 그중 누에고치라는 단 한가지 단계만을 사용한다. 누에고치라는 단 한가지 단계만 사요하고 실을 풀고 나면 인간은 누에가 성장하고 움직이고 번식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버린다. 목화 덤불에 뿌리 줄기 꽃이 있지만 인간은 오직 그중의 하나 씨앗의 껍질에서 자라는 단세포 섬유만 사용한다. 자연이 이 섬유를 만든 것은 씨앗이 바람에 날려 그 식물이 땅 전체에 퍼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인간은 오히려 이 작은 필라멘트를 취함으로써 진화가 그들을 위해 구상한 길을 따르지 않았으며 자연의 규칙을 인간의 이익만을 취하고 버린 것이다. 인간은 일부요소는 추출하고 나머지 요소는 저버리는 방법을 다각화 함으로써 소비를 늘리고 폐기물을 확산시킨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의 본성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본성까지 변화시킨다. 

자연이 무한하고 선한 것처럼 보이는 한, 자연이란 신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여겨질 수 있었다. 이것이 창조자 자연(Natural naturans)과 창조된 자연(natura naturata)을 구별하면서 생각한 바였다.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수요와 비교했을때의 과잉 공급 뿐이다. 

the raw와 the cooked는 반대개념으로 raw는 자연의 일부즉 자연이고 cooked는 문화의 산물인것이다. 

항구와 산업도시가 발달한 것은 상품의 장거리 무역덕분이었다. 시장도시는 멀리서 상품이 배달되고 운송되고 가공되는 곳 여러길이 교차하는 곳에 들어섰고 최고 무역은 물길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최고 상품은 건조물이었다. 상품을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상업기술의 기본이 되었고 신흥자본주의는 물을 피했을 뿐 아니라 그만큼이나 물에 의존했다. 변형과 운송이 결합되어야만 비로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먼거리에 있는 상품일수록 더 큰 이윤을 안겨주었고 더 큰 악을 초래했다.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엇다. 사치는 모방으로, 모방은 상업으로, 상업은 자유로이 이어진다. 

나태는 자연과 노동의 균형이었다. 모방이 진보로 이어지고 진보는 모방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순환을 깨뜰릴 수 있는 창의적 에너지가 둘어설 여지도 참신함도 혁명도 없다. 

역사는 불가사의하다. 식민지에도 분명 문화가 있었고 바로 이 점이 식민지를 불충실하고 믿기 어렵게 만든 요소였던 것이다. 인간이 프로덕트를 만들때면 계절을 잊을 수 있지만, 들판에서 일할때는 계절을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20년 반복이 최화의 원천이엇을지 몰라도 분업은 진보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관념은 감정과 서로 얽혀있다. 특정종류의 원자재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손꼽힐 때면 자원공황이 발생한다. 지금의 반도체가 모든 ai에 필요해지면서 급 자원공황이 생기고 필수자원이 바닥나면 전쟁과 봉기는 피할 수 없는 듯 하다. 전쟁과 혁명은 탐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파 필수 공급품의 고갈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다. 

애초에 자연이라는 말에는 nature 그대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동양에 천지인 사상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매개체가 인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전도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가 통하는 하늘에서 땅으로 통하는 사람들 그래서 애초 하늘이 처음 열릴때는 인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주술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자연을 외경과 두려움, 천문학이라던가 그 자연의 routine을 이해하는 사람이 최고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자연은 분명히 유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자연 애초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 많을 수록 자연은 그 원칙에 벗어난 것들은 질서들을 배반한 댓가로 인류에게 그 부작용을 반드시 준다는 것이다. 자연의 거대한 rule을 생각해 보면 자연은 무엇하나 버릴 수 없는 원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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