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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by 링마이벨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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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생 일제 강정기 해방 2년전에 태어났다. 43년 음 현재나이 78세 아마 이 분처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1963년 연극배우에서 KBS 공채로 대한민국 남자의 지존, 존재감도 없고 찌질한 대한 남아의 기상을 떨치고 일어난 배우였다. 이름만 봐도 이대근이라니 아마도 왜 유난히 대한미국의 아버지란 이름에는 애환이 담겨져 있었을까? 어떤 애환들이 묻어나 있길래 이렇게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우린 아버지란 이름에는 가족을 위해서는 모든것을 한다. 라는 것이 함축돼 있다고 본다. 왜? 우리는 존재의 이유보다 그 상징보다 맬 먹는 끼니가 중요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집에 몰두하고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모든것을 기꺼이 모든것을 불사하고 상식적으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의 굴곡이 삶의 애환이 상식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국군과 인민군이 교체돼고, 심지어 국군에 내 가족 양민이 몇천 몇만이 빨갱이로 몰려 사살되고 내 이웃에 빨갱이로 몰려 가족이 모두 살해돼는 일제 앞잡이가 다시 경찰이 군인이 정치인이 되는 현실에서 상식과 비판이 어디 있으며 오로시 존재 내가 오늘을 살아 남아야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옸던 것 것이다. 거기에 일제 강정기 얼마나 많은 내부 밀정을 만들어 자기 민족끼리도 불신과 갈등을 조장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 어마 아빠의 존재이뉴는 척박하고 얼마나 많은 갈등과 모함이 존재했을지는 그 아사리 판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유태인이 수용소에서 나치의 감시와 그 살해이험었다면 울 엄마 아빠는 삶이 그 자페가 살얼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회현상에서 의리와 것도 돌쇠처럼 우직한 남성상을 가지고 조금은 erotic하고 많이 과장돼 있지만 밉지 않은 이대근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을 가질만 했건 것이다. 힘은 어마어마하고 지금의 마동석 정도였ㄹ까?

이런 매력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 아마도 이 만화영화같은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김두환에서 시라소니 제3 제5공화국에서 파워풀한 권력지향 인물에서 완벽한 애로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변신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의 concept을 가지고 그 컨셉으로 애정영화에 그러한 힘과 돌쇠 뚝심, 그러한 마쵸의 캐릭터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왜 성공했을까? 아마도 그당시 여성들의 남성관이 전쟁후 아니면 살기 어려웠던 그 세태에 보다 강력하고 가족과 여성자신을 끌어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이 힘들고 지친 삶에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지닌 남자 그 남자가 오바인것은 알지만 그 오바마저 귀엽고 밉지 않게 보이지 않았을까? 거기에 여성 스스로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에서 좀더 자유롭고 이탈하고싶은 여성스스로 커져간 자율성에 는 뜬것이 아닐지 싶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의 모든것을 다 짊어지고 성큼성큼 걸어나갈 수 있으리라 그런 기대를 가지게 했던 캐릭터 였던 것이다.
또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직접적인 그 무한한 성적 환타지릉 채워줄 구 있는 인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 삶에서 실제 결혼후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많이 피곤했을 것이라는 것 그러한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의 논리가 억측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일듯 하다. 성에 대해 터부시하고 유난히 나쁘게 판단하게 된 것 그러한 일반적 개념은 아마도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비 상식적인 변화를 가진 이 사회가 일상적으로 아니 평범하게 받이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듯 하다. 가족이라는 것, 그 문화가 다양성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포용성이 없던 사회에서 하나의 다양성과 즐거움을 주었다는 것 그런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는것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기에 풍분해 보이는 것이다. 그 말투, 그 오바된 행동, 그 눈매가 가끔 이제는 이 시대에서 없어지는 캐릭터이기에 더욱 안타까워 보인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너무나 남의 시건, 어색함, 뷸편함을 잠시라도 못 참어하는 그러한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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