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는듯 없는듯하다. 라는 표현이 현실에서 가능한 표현일까 싶다. 왜냐하면 빈자리는 편하기 때문이다. 빈자리는 빈자리로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빈자리를 오래보면 무엇을 말하는것 같다. "어찌보면 가장 존재의 큰 표현은 부재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하기도 한 이유인 것이다. 이러한 부재라는 표현은 어찌보면 부재의 역설이요! 존재라는 부분을 더 강하게 강조할 수 있는 하나의 빈 표현인 것이다. 아마도 소리없는 아우성이나 어찌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나는 이러한 absense라는 표현은 아라비아 숫자 "0" 이나 "not" 이나닌 "being"의 또다른 표현으로 존재는 하는데 수업중에 잠깐 화장실이나 어찌보면 존재하면서 moving이거나 moved 한 상황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없다는 것에 대한 강렬한 열망일수도 있는데 ...
"방문앞을 지나가도 방에 없는듯 적막하다. 노래와 춤을 잘하면서도 잘 못하는듯 다소곳하다."이 표현은 얼마나 나이가 들어야 가능한 영역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것에 평정심을 가지고 또한 그 평정심이 또한 편안해질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상처를 받아야 하고 얼마만큼의 상처를 얼마만큼의 냉소를 견뎌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심과 열정과 열망과 질투를 가진 인간이기에 참으로 나 또한 이만큼의 경지를 가질려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오로지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물위에 떠 있는 것 처럼 물속에 잠긴것 처럼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너는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살수 있을까? 자유로와 질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또한 무엇이 필요없는 것인지 함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