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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비건이 중요한가 삶이 중요한가

by 링마이벨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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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비건 우리 가족은 정신이 없다. 아들이 비건이라는 베지태리언이라는 둥 알 수없는 말을 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주중 주말 이 비건은 우리가정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앉아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워낙 등심과 삼겹살을 넘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식사의 기호라고 생각하고 서로의 것을 먹자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애가 말라갈 수록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럼 왜 비건이든 베지태리언이 돼기로 했던 것일까? 사실 다이어트의 심화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아버지인 내가 남들보다 덩치도 크고 몸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확증이기도 한 팩트로 내가 100kg이 넘다 보니 아들은 살찌는것에 경계하게 돼었고 본인도 고기를 넘 먹다가 중간에 여친이 생기면서 그러한 자각이 생기면서 이러한 비건이라는 노선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과거 이야가한 " 먹기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느냐?"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냥 살기위해 먹는 것이 아닌 이제는 "잘 살기 위해 잘 먹어야 한다."로 바뀐 것같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사는 삶이 시시각각으로 보여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잘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잘 생긴것이 최선이고 좋은 것을 먹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좋은 삶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제 SNS에서 최고의 덕은 잘 보여줘야 한다. 그 디지털 세상에 보다 예쁘고 보다 멋있게 보다 럭셔리하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시선마저 counting이 된다. 그러한 많은 시선은 곧 돈이 돼어 우리에게 refund해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더 가치있고 예쁘게 포장해 주는 것이다. 바로 그 DIGITAL의 가치가 곧 우리의 삶의 가치로 투영돼게 된 것이다. 이상의 시에서 '거울'에서 거울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실제와는 달리 이제는 거울속이 실제의 나보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어 보이는 때가 오게 된것이다. 현실의 나는 힘들고 어렵고 찌질하지만 거울속의 나는 예쁘고 아름답고 최고의 덕을 가진 아바타로 보여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 한층더 나아지는 경험을 디지털을 통해서 SNS를 통해서 체험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은 우리의 보여지는 모든것을 더 더더 하게 된다. 그 조그만 카메라를 통하여 내다본 세상은 사진처럼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게 우하하고 아름답게만 포장돼어 질 수 없는데 그러한 세상을 스케치해준다. 

"Seeing is believing." 영어시험에 많이 나왔던 문장인데 우린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해석해 왔다.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이 눈일것이다. 하지만 눈은 가끔 착시를 믿게하고 현실도 나의 의식대로 보게 한다. 내가 보고자 하는 바를 믿고 내가 믿고자 하는 바대로 보게 돼는 것이다. 애초에 동굴에서 바라본 세상이기 때문이고 우물안에서 바라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도가 빠르고 내가 볼 수 있는 렌즈가 그러한 디지털렌즈라면 어찌 보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도 제한이 돼어 있을 것이다. 

왜 방향이 이리로 갔지! 어 비건은 결국 보여지는 나와 내가 보고싶은 나와의 심각한 표리로 인해 일어나는 하나의 인지행동이라고 난 판단한다. 보다 많은 것을 의식하고 신경쓰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디지털이란 얼마나 얕고 표면적인지 프라이버시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모든것을 드러내는 패러독스 세상이다. 이 표리부동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삶의 방향성을 다시한번 나에게로 돌린다면 아니 비건이 삶의 방향이 외부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 방향키가 나로 향하지 않고 외부로 향하는 것 같다. 우리의 디지털은 보여지는 모든것을 high, high하라고 자꾸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의 모바일은 너무 깊숙히 들어와 이제는 내 한몸 숨길수도 없게 한다. 나의 이력은 나의 경력이돼고 내이력은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자꾸 나답지 않고 거울속에 나로 바꾸어 버린다. 내가 원하는 것을 멈추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고 재촉한다. 실제 나는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잡이처럼 보이게 하고 내가 관심도 없는 부분을 나의 최고의 가치로 포장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게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겉과 속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다른 겉과 속이 순환하면서 가끔은 나조차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디지털이 우리에게 준 착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맛있다." 라는 명제로 그런데 실상 보기에 좋은 떡이 항상 맛있지는 않다는 걸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나의 경험이 남이 보기에 보다 우선하고 나의 의식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아들이 비건을 택하게 한 건 나의 비만이 아니라 우리의 엿같은 디지털 세상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포장돼어 있는 실재와 실상이 다르듯이 말이다. 선물의 포장지와 내용물이 다르다는 것 우리의 경험에서 선물이 약할때 우리는 포장지를 세게 하듯이 말이다. 디지털의 세상은 실재의 우리를 억압하거나 스트레스를 주면 안된다. 너는 니 주제에 맞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과대포장돼어 있다는 것이다. 그게 세상이고 그게 삶이라는 진작 알아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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