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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박수홍 아버지, 명절 “아들로 인정 안해” 父 충격 발언

by 링마이벨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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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달리 유교의 가르침이 뿌리 깊히 내리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군위신강과 군신유의, 그리고 부위부강과 부부유별의 덕목이 서로 그 근본 뜻이 다르게 우리를 옥죄어 왔다고 본다. 아버지 신하 친구 존경하지만 서로 친함이 있어야 한다고 함은 애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덕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유교는 너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조선 건국초 정도전을 보면 왕이 나라의 근간이 아니고 왕을 견제할 수 있도록 권력을 다원화 했다. 사실 다원화라고 하지만 아마도 조정대신들의 분립을 통해서 왕권을 극도로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 했는데 그 중심에 서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unesco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서원들은 조선시대 그 외압을 받고도 거뜬히 지금까지 서원을 아무리 철폐하더라도 서원은 때로는 정치권 패권의 프랜챠이즈 역할을 때로는 정치적 교두보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사원은 권력의 집합체이자 가장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권 프로파갠다 역할을 한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교육이 넘 이론 중심이고 학파와 교육이 서열화돠고 라이센스롸 돼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듯 하다. 사원은 쉽게 말하면 현재 지방의 명문 사학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데 지역적으로 보면 경상 전라에 집중돼 있다. 우리의 지역 정서적 현상은 뿌리깊은 학연이 우선하고 있단 것이다. 송시열, 퇴계 이황 이 거두는 학문적 자유와 사상의 자유로움을 앗아간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유교의 가르침과 중국의 공자, 맹자를 떠 받치던 이 시스템이 정치와 결탁하는 순간 말하자면 사료를 가지고 예라는 잣대를 들이 밀면서 사화와 당쟁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제례가 중요하긴 하지만 산사람보다 중요할까? 인류 최고의 숙제인 죽음을 다루는 제례는 중요한 의식일 수 밖에 없다. 조선 죽음을 관정했던 서원은 아카데믹과 종교적 특성을 갖춘 서원은 아마도 철학 도덕 정치의 헤게모니를 한꺼번에 가져갈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무진장 생명력을 가져갔던건 아닐까 한다. 지금도 교육이라는 부분은 우리의 1970년대 우리의 2022년에 있어 앞으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자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리 길게 이야기 한 것은 사실 우리의 가족제도는 가족제도의 자체의 중요함으로 기원했기 보다는 통치자의 최소단위로 또한 학교가 사학이 유림을 생산한 이유는 서원이 먼저였고 가족은 그 도덕적 실행적 추종자로서의 최소단위였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가족의 중요함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많았고 그 변형이 돼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화이고 당쟁이고 그러한 도덕적 헤게모니 그 권력다툼으로서 피해자가 돼어 왔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박수홍 아버지, "박수홍을 아들로 인정안한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보며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든다. 혈연만큼 자연스럽고 의무감이 드는 단어가 있을까? 우리민족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가 생존하는 이유는 아마도 '가족' 이었을 것이다. 혈연을 배반 한다는 것은 곧바로 흔히 "호적을 파버린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 뿌리인  '호적'을 파가라는 것은 가장 큰 범죄이자 큰 도덕적 결과로 이야기 했던 것이다. 지금의 가족 제도가 변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러한 행위의 결과와 원인이 그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공인으로서 가족제도를 부수는 것은 사회적 지탄과 그만큼 부담스러우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건을 진행하는 것은 우리의 가족 문화 시스템이 너무 어떤때는 도덕적인 교화로 정치적인 이유로 또 어떤때는 산업화로 잊혀지다가 이제 먹고 살만하니 이러한 문제들이 대두돼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영역일것이다. 자본이 신앙이 돼고 있다. 나의 구글의 알고리즘은 돈, 부,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 투자, 주식, etf, 연금등 많은 것들이 돈이라는 영역에 집중돼 있다. 나도 부인 못하는 일이지만 초 자본은 모든 것을 초토화 시키고 있다. 가뜩이나 뿌리도 없고 근본도 없이 주마간산 격으로 달리는 말에 의지에 달여오느라 주변을 보지를 못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모든 구간마다 묻혀진 또는 가려진 갈등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아이들은 더더욱 적게 낳고 소수에 집중돼 있고 가족은 볼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젠 가족을 뒤돌아 보아야 할때가 온것 같다. 나도 내 가족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이러한 가족을 사랑할 수 있고 받칠수 있는 뿌리가 어떤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먼저, 가족이라는 소명은 아마 한 인간이 태어나 유전자의 결합이상으로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이라는 부분으로 내 아버지, 내아버지의 아버지, 내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모두 내 할아버지의 아들 내아버지의 아들 내 어머니의 자식들 내 어머니의 딸 할머니의 딸들 대개 우리는 너무 바쁘다. 가족을 돌보고 가족을 볼 물리적인 시간들도 사라져 간다. 이 놈의 코로나는 그 최소함 마저도 생략해 버리고 그 전부를 가치없는 일로 치부하고 평가한다. 합리적 초 합리적이고 초 자본적인 부분으로 속도에 맞는 최고의 가치라는 영역이 어떤 부분인지를 ai가 판단하듯이 어떤 것이 불필요한 영역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 최고의 가치라는 최저의 노력으로 어쩌면 최고의 효율로 판단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변수도 하나의 변수로 이해되어진다.

 지금의 가족제도는 속도로 인해 많이 힘들다. 뿌리가 드러나 물속에 떠다니는 부평초처럼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는 relation보다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의사가 반영돼 있지 않은 random selection이라는 영역으로 흐르는 것 같다. 가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가족을 다스리기 위한 기본 unit으로 생각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각자 도생하다 보니 많은 논리적 결핍과 의무적인 사랑으로 대한민국의 가정은 흔들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가정은 많이 힘들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기계의 속도를 뒤로 물리는 부분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문화는 이 속도로 인해 멸망할것 같다.  속도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머뭇거림이나 방황, 생각, 되돌아봄 등 회상을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속도는 더욱더 우리를 사지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계파괴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그때는 job 이었다면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속도를 늦춰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더욱더 빠른 문화는 더욱더 빨리 침몰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성이라는 영역도 빠르면 빠를 수록 빨리 상실하는 시기 말이다. 우리 스스로 멈추고 뒤돌아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 된다. 

박수홍씨가 시사하는 바는 커 보인다. 공인이 만드는 가족제도의 허와실을 실랄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다. 우리의 가족제도가 얼마나 왜곡돼고 진실에 대한 법적 공방으로 법이라는 영역으로 넘어온것이 한편으로는 슬픈 것이다. 법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왜곡돼고 실질적으로 법은 법을 아는 사람들과 부를 위한 공간만을 철저하게 보호한다는 것이다. 가족제도가 법으로 심판 받는 게 적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왜냐면 우리의 법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그저 있는자를 보호하는 자위적 발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너무나 커보인다. 그것이 옳고 그르든 간에 사회적 가족이라는 영역을 더 빨리 망가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막을 방법도 억지로 지연할 방법도 없지만 가속화 돼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진실보다는 안까타운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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