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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대한민국에서 남자들 사이에 가장 어려운 일

by 링마이벨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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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이처럼 힘들일은 없어 보인다. 학교 다닐때는 모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자 이 문제는 가장 민망하게 직장생활을 가장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는 주먹 다지을 하게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빠른'이다. 모씨 대통령이 만나이를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릴려고 하지만 이 '빠른'의 갈등은 대한민국 사회 뿌리깊이 박혀 있다. 서열을 정리하는 방법중에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아마도 '나이'다. 나이는 아마도 유교가 뿌리 깊히 박혀 있던 문화에서 '경험'과 

'삶의 통찰력'을 중시했던 고대의 가장 보편적인 분류 방법으로 몇 천년을 내려왔다. 전쟁이 많았던 나라 치고는 강자가 모든 것을 쟁취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전쟁은 성격으로 분류해 보면  전쟁에 능동적인 형태가 아닌 수동적 형태 즉 침략 전쟁이 아닌 방어 전쟁을 지속하다 보니 '무'보다는 지극히 '문'이라는 방식의 지식을 많이 쌓는 형태로 실질적 학문 보다는 남 즉 강대국의 지식을 가장 잘 수용하는 자세와 그 강대국의 글을 많이 알고 그 강대국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향으로 지식의 가치 판단 기준을 설립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문화에서 강력한 유교국가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조선초기에 예를 숭상할 수 밖에 없고 강함이라는 것을 경시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러한 국가를 다스리는 원칙은 아무래도 '나이' '학벌' '성향'은 평생 따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이는 조선의 모든 디테일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돼었던 것이다. 아마도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비춰 지던 농경사회의 나이는 누구보다도 하늘을 볼줄알고 별자리를 보고 구름을 보고 내일의 날씨를 예상할 수도 있거나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판단했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나이는 꽃이피고 꽃이지는 반복의 과정을 많이 지켜 보았던 사람, 산에 있는 나물의 잎만 보고  먹을 것과 독이 있는 것을 판단할 수 있고 사람을 보고 여러가지 판단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반복을 통한 학습, 그 학습에 강점이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 '루틴'을 가장 옆에서 지켜 보고 그 과정을 숙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프레임중 농경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산업화 시대와 컴퓨터 AI 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차가 처음 시장으로 나올 때 운전기사는 가장 월급을 많이 받았던 직업군이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 그 수많은 루틴을 한번에 학습하여 가장 현명한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필요치 않았고 기계가 사람이 하던 모든일을 대신 하게 된 것이다. 경험을 버리고 기계가 대치된 것이다. 나이는 불필요한 악세사리로 인식되었고 불황기에 나이는 원치않는 직장을 강제로 그만두게 될때 또한 엄격한 기준이 되어 버렸다. 우리 대한민국은 나이와 너무나도 밀접한 관계를 띄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나이에 민감하고 민감한 문화에서 12개월 1년으로 끊는 기준에서 빠른 1월~3월 1Qtr에 태어난 사람은 학교를 일찍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태어나 20년 가까이 나이를 한살을 빨리 먹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빠른 출생자와 정상 출생자는 어느 공간에서는 친구였고 다른 공간은 형 동생으로 분류가 되었던 것이다. 동일나이 바구니에는 -1 ~ +1 즉 한살 적거나 한살 많거나 3살이 한 cycle이 돼었던 것이다. 

나는 한살 빨리 들었갔고 재수까지 한 나는 온통 꼬일대로 꼬여버린 것이다. 결국 5명이 다 다른 호칭으로 정의가 된 5명이랑 술을 먹는다면 얼마나 머리 아프고 비 상식 적일까? '형' '선배' '씨' '선배님' '선배' '야' 이 많은 호칭들을 실제로 나는 써본적이 있다.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관계는 정의다. definition 정의라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사람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물은 모두 이 정의에 적용되는 듯하다. 호칭이 부자연스러우면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 고로 발전을 위하여서는 호칭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호칭을 문화적인 관습법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관습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 '빠른'은 나이가 중요한 문화권에서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처사로 인식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많은 핑계를 댄다. '호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호적의 오기로 인한 나이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동사무실이 전산화 돼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마도 면사무소든 동사무소든 가서 신고하고 난 이후에도 누락된 사례도 많았다 한다.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구청이든 면사무소 동사무소 그 많은 인원이 실제로 누락이 돼었단 말인가?

다음으로 '어머니 아버지의 게으름' 신고를 해야 하는데 생업이 너무 바빠서 1~2년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생신고는 너무 늦게 했다면 나이들어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봐야 그 숫자가 적으면 적을 수록 얼마나 맘 편하고 좋은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대한 증명 방법으로는 '어머니랑 통화하기'이다. 엄마의 게으름과 국가 시스템의 부재를 어머니랑 울면서 전화가 오는 자식을 통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대개는 이 모든 해프닝의 이유는 한살이다. +1이 실제고 -1은 아니고 나는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 빠른은 나는 한살이 더 많으니 친구로 지내자는 것이다. 국가가 또한 정확히 생년월일로 학교를 잘랐어야 하는데 이 빠른은 학교에 애들도 없고 교실은 크고 하니 때려 넣었던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만큼 애들이 많다보니 빠른 생년월일을 앞으로 잡아빼서 교실정원을 채웠던 것 아닐까? 사실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다 사회로 나와서 다른이에게 애꿏은 형이라 불러야 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더러웠을지도 이해가 된다. 허지만 사실 다른 사람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 빠른으로 또한 한 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한 살 적은 놈이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해서 설득하냐고 넘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씨'로 협의를 했지만 말이다. 

가끔 나이와 학번이 겹치면 설상가상 상황이 돼버린다. 학교 다닐때 계속 형이라고 부르다가 그 형이 내 고등학교 친한 친구의 친구로 지낼때 이건 왕짜증난다. 친구인데 형이라니, 아마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민등록증으로 까서 정리하는 방법이 가장 깔끔하다. 형이라 부르고 싶지 않으면 관계가 zero base 시켜버린다. 안타깝지만 말이다. 

평생 속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레포츠를 할때도 주민등록증에 서명이 필요하다 보니 평생 속인 2살 1살은 자존심이 확 상한다. 지금껏 지내온 20-30년의 시간도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약간 속았다는 배신감과 진짜로 저 인간의 거짓말을 증명할 방법은 술먹고 어머니랑 울며 전화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도 한 두번이지 가끔 3살을 속인놈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사회를 못 믿을 수 밖에 안타깝지만 우리에게 나이테는 흔적도 흔적이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이요 결과이기 때문에 정직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님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까이면 말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것은 진리고 진짜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단언컨대 바로 '빠른'이 주는 여러가지 갈등이 문화적 현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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