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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놋쇠

by 링마이벨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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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놋쇠 그릇은 수천만번 망치질과 주물로 때리고 또 때리고 펴고 또 펴고 그리고 연마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벼농사에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하는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면 쉽사리 일반가정에서 놋쇠그릇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가족제도에서 상용할 수 있는 무게감이나 서양의 장식과 우리의 놋쇠의 투박함은 아마도 서로의 방향이 달랐다. 장식이나 기교를 최대한 배제한 최고의 단순함과 무게가 주는 묵직함이 깊이를 주는 것이다. 

 이 아인 또 어떤가? 하나의 사진으로 보면 여백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잎이 굵어졌다 가늘어지고 가늘어졌다 굵어지고 몇개의 잎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비어있는 화면에 가끔은 글이나 시로 또는 낙관을 우리는 얼마나 멋진 민족이란 말인가? 이 여유로움과 철저하게 욕심과 욕망들을 뒤로하고 단순하게 극도로 단순하게 표현하던 선조들의 절제미가 가끔은 무섭고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놋쇠와 난은 다른듯 같아보이고 같은듯 또한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만들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단순함이 그 많았던 질곡의 역사를 밝히는 기둥이 돼었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함은 시간이 지날 수록 가치와 속도감을 부여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것의 가치는 속도와 내용으로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속도 지상주의로 더욱더 빨라지고 있고 그 가치의 끝은 결국은 스스로 존재자체를 zero base로 만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가 상충할 수 밖에 없고 그 상반된 가치로 인해 자연은 인류와 다른 파국을 맞이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수천번 수만번 놋쇠를 두들겨서 펴는 이유 어찌보면 속도라는 개념이 파괴될 때 최고의 명품이 만들어졌던 과거의 유산들이 이제는 자연과 같이 인간의 속도로 인해 많은 것들이 실제로 사라지고 아예 없어지고 있다. 자연은 너무나도 정직하고 완벽한 인간의 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인간은 속도에 중독돼어 모든 것을 잃게 돼어 무로 돌아 갈 수도 있다. 자연은 단순하지만 자연은 그 단순함으로 어느정도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자연이 훼손될 때에는 그 기준점을 해수점을 다시 '0'으로 만들어 버리고 시점을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명품은 다름아닌 우리에게 모든 지식과 시행착오를 주었던 깨달음을 주었던 자연이었고 자연은 수천만 놋그릇을 만들던 망치질을 지속한 후에 다시 영으로 돌아가는 무서운 독재자 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순함만큼 강력하고 내 자신에 철저했던 조상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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