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해봅니다.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오늘 날 있는 많은 경우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고통을 줄 수 있어도 표현의 자유라는 그 울타리 안에 두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가 없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목적과 어떤 의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알고싶다. 마치 표현의 자유가 진실이라는 양심을 철저히 배척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그 포용성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인가? 아님 진실을 유지하기 위한 옷에 불과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래의 리스트는 위키에서 홀로코스트부정이란 검색어 조건으로 나온 결과물이다. 이런류의 주장은 다소 위험하기도 위협스러웓도 보이는데 어디에든 다른 주장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이 실재다. 어디에도 명확해 보이는 사건에도 견해가 있고 주의주장과 사실의 명제에 반해보이는 주장들이 버젓이 이야기되고 있다.
사실 나는 어떤 주의 주장을 해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회복력과 그 건강함이 그 사회의 건강함과 건전함의 잣대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사실 외부적으로 자유스럽게 보이는 프랑스도 우리의 역사적 괘 즉 '괴뢰정부'수립과 나치의 통치에서 많은 괴로움을 당한 나라이다. 그 자유스러워 보이는 프랑스는 내가 볼때 외견상 모습이고 그 누구보다도 보수적이고 지식인의 아집이 그 어떤 나라보다 더 견고하고 보수적으로 보인다. 우리의 서원이 조선시대 그 된서리를 맞을때에도 살아남아 그 명백을 유지한 것 처럼 결국 그 명백이 독립전쟁시 일제 강정기를 거치면서 1919년 3.1이후 치열한 독립운동을 지속했던 정신적 힘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건강함은 적절한 세균배양한 것을 백신으로 몸안에 강제로 투입시켜 거기에 따른 적응력과 온몸의 방어태세를 완벽히 준비하는 것처럼 사회가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다양한 주의 주장에 대해 복원력을 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복원력은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진실을 향한 무던한 노력들이 그동안의 결과물로 관습을 형성시켜 향상성의 노력들이 전제되고 그 text를 실어나르는 언론이라는 틀이 자유스럽게 헤엄칠 수 있도록 가장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역할인데 여기서 우리가 난맥상이 발생한지 꽤 오래돼 보인다. 언론이 기득권에 붙어 이익을 창출하기 바쁘고 언론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맬 국민을 이간질 하고 싸움시킨지 오래다. 왜 그렇게 할까?
이 해답은 종편의 허가로 인해 이 선순환 구조가 깨져 보인다. 언론이 언론스럽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견해에 숨어있으면서 입은 독소를 퍼뜨르기에 바쁘다. 나 또한 어는 진영에서서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것 같다. 2025년 들어 더욱더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 되는 것 같다. 사실 탄핵에 대한 중요성도 인지하지만 나는 요즘들어 전혀 뉴스를 소비하지 않고 있다. 뉴스가 너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뉴스를 볼 수 없다. 편가르기 정도가 아니고 혹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가 국민을 가마솥에 내 던진다. 어떤 책임을 지닌 정치인도 뉴스도 없고 오로지 현상에만 집중하며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싸우게 만든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선거에 대한 정치 공학적인 해석때문일 수도 있고 정파의 도움 유뮤일 수도 있다. 좀 심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 같다. 서로 정신을 차리고 좀 쉬면서 지금을 돌아볼 필요가 생긴것 같다. 심히 무섭고 어려운 형국으로 국민들이 내 몰리는 것 같다. 할아버지요, 내 딸이요! 아들이요! 인데 넘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같다.
바로잡으려는 지식인과 냉정한 언론이 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