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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담판

by 링마이벨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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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을제의한한니발이 먼저 입을열었다. 
“아마 가장 행복한 선택은 로마인이 이탈리아 밖으로는 촉수를 뻗지 않고, 카르타고인이 아프리카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이었을 거요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의 다툼거리는 시칠리아이고 사르데냐이고 에스 파냐였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이젠 다 지난 일이고 문제는 현재요. 현재, 우리는 둘 다 조국의 존망을 걸고 싸우게끔 되었소. 따라서 이 위험한 도박을 회피하고 싶으면 양국간의 다툼을 그만둘 수밖에 없소.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소. 운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농락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오. 
스키피오 장군, 젊은 그대는 납득하기 어려울지도모르겠소. 하지만 그건 굳이 과거 역사에서 선례를 찾을 필요도 없소. 오늘날에도 그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으니까? 
칸나이 전투 이후 나는 이탈리아의 주인이었소. 수도 로마에 육박할 일까지 있소. 당시에는 이 한니발이 로마인의 생명과 로마 국가의 운 명을 결정하는 심판자였소. 그런데 지금은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로마 인인 그대와 함께 카르타고의 운명에 관해 회담까지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소. 
이런 나를 교만한 인간이라고는 생각지 말아주시오. 현재 상황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있고, 좋은 것은더 큰쪽을 선택하고 나쁜 것은 더 작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유일한 대책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오. 
신중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다가오는 위험에 굳이 맞서겠소. 그대가 나와 대결하여 승리자가 된다 해도, 그대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 도 아니고, 로마의 명예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오!  반대로 그대가 패배 하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그대가 거둔 눈부신 업적은 물품이 될 뿐 만 아니라, 그대 자신의 파멸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오! 
그래서 나는 제안하고싶소. 로마인은 시칠리아와 사르데나 에스파냐 등 지금까지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다툼거리가 된 모든 지방의 정식 소유자가 되는 거요. 카르타고인은 이런 지방을 이런 지방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두 번 다시 전쟁에 호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겠소. 이런 조건이라면 카르타고는 장래까지 계속되는 안전을 보장받게 되고, 그대와 모든 로마인도 커다란 명예를 얻게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하오."

한니발의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는 그보다12세나 연하인 스키피오가 입을 열 차례였다. " 이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 쪽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장군께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오. 신들이 로마인을 도와서 승리로 이끌었다면, 그것은 신들조차도 누가 잘못했는지를 알고 방어를 위해 일어선 자를 편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 분더하오. 
나도 운명이 변덕스럽다는 것쯤 잘 알고 있소.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 할 수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층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오. 만약 로마군이 아프리카를 침공하기 전에 장군께서 자발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철수했다면, 그리고 내가 제안한 강화 교섭이 결렬되기 전이었다면, 장군의 제안은 장군께서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어졌을 거요. 그러나 장군께서 이탈리아에서 철수한 것은 장군의 뜻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소. 아프리카를 침공한 우리 로마군의 전과에 영향을 받아 철수한 거요. 장군께서 제시한 강화 조건도 우리가 보기에는 오히려 당연한 거요. 게다가 로마에서는 민회까지 승인한 강화를 결렬시킨 것 은카르타고쪽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주시오.
그런데 나더러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요. 장군께서 내 처지라면 어 떻게 하겠소.  장군과 카르타고 정부가 아무리 승복할 수 없다 해도, 내 위한강화조건을바꿀수는 없소. 
한니발 장군, 장군께는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라고 권할 수밖에 없소. 왜냐면 카르타고인, 그 중에서도 특히 한니발 그대는 무엇보다 평화롭게 사는 데 능숙하지못한 모양이니까."
두 장군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헤어져 언덕을 내려왔다. 역사상 유명 한 ‘자마 전투’ 는 이틈날 아침에 결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카르타고와 로마, 3만 명의 병력과 4만 명의 병력이 맞붙는 대회전인 동시어에, 전략 전술의 스승과 그의 제자가 벌인 첫 대결이기 도했다. 
전술의 최고 걸작이면서도 로마인의 집요함 때문에 결국 전쟁의 행 방을 결정하지 못한 칸나이 전투와는 달리,  자마 전투는 전쟁의 행방을 결정하는 동시에 지중해 세계 전체의 장래를 결정하는 싸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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