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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

by 링마이벨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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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살아오면서 어떤 종교, 어떤 이념, 어떤 가치에 대해 정말 온통 나를 걸고 살아온 것 같지 않다. 심지어 나를 존재하게 한 그 알지 못하는 힘과 연계성과 필연 어떤 도덕적 가치도 신념도 내 주위에 모든 중요한 가치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도 사실 그 누구도 그 방향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끔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좋으련만 솔직히 나는 그러한 대상이 없다. 그저 열심히 살고 즐겁게 살 뿐이다. 그리고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는 가치 외에는 별로 없다. 나고 자라면서 밖에서 많이 생활한 나는 가족이 항상 그리웠고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에서야 알 수 있지만 어릴때 느꼈던 모든 가치들에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끼니 걱정을 했다는 것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자취생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성인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내 육신의 피로함을 모두 이기고 불편함과 고난의 길을 걸어서 그러한 업적을 이루었단 말인가? 어떻게 부처는 예수는 맹자는 공잔 그러한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쓰디쓴 길을 택했는지 어떤 이유로 어떤 동기로 그 고난의 길을 갔는지 궁금하다. 구지 알면서 갔다면 더더욱 더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내 몸이 원하는 안락함과 달고단 그 열매를 먹지 않고 왜 먹지도 않는 그 익지도 않은 햇곡식을 그 거친 곡식을 먹었단 말인가? 난 그것이 궁금하다. 누구의 강요로 했는지 아니면 누가 멋잇어 보였나? 혹시 멋있는 친구가 주변에 있어서 그의 삶을 모방하고 따라한 것은 아닐까? 그러다 오히려 친구를 넘어서는 결실을 것도 우연히 얻은 것은 아닐까? 우연히 소 뒷걸음 치다가 얻어 걸린 지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왜 모든 성인은 일부러 고행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일부러 힘든 일을 하려 하는 것일까? 고행을 통해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얻는 것은 자명한 진리인것 같다. 오체투지를 통해서 100일 기도 1000배등 우리는 반복적인 고행을 통해 내 몸이 부서지고 힘들어 질때 무언가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진리란 지고지순의 원리 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자명하고 단순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 그 차제로 보인다. 여기서 상식이란 내가 힘들면 남도 싫고 나의 일신상의 편안함이 최우선이고 최고의 가치를 그 넘사벽 가치를 뛰어 넘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이유와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수 없다. 하기야 알수 없어서 내가 범인으로서 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때 나는 잠깐 심리학을 배울때 성인이 될 수 있는 요인을 심리학적 아니면 어떤 결핍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결핍이 심하면 더욱더 편향성을 몰두 하게 됨을 깨닫게 돼었다. "결핍이 성인을 만들었다."라는 논리였는데 살아오니 얼마나 형편없는 사고였음을 깨닫게 돼었다. 삶의 가치는 교육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분명히 아니고 내 스스로의 가치들이 높아져 하나의 커다란 신념을 깨닫는 것이 아니고 생활을 통해 오랜시간 축척된 그 경험적인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꺼다란 깨달음은 한 순간 드는 인사이트가 아니라 아주 익숙하고 반복된 그 경험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는 다름아닌 나의 가치가 세상에 배어드는 과정인것이다. 결국 내가 곧 세상이돼고 세상은 나의 거울일뿐 중요한것은 나란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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