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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E TOWN

by 링마이벨 2017.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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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서 가장오래된 유럽인 거주지다. 거대한 해상표지가 되었고 극동지역으로 가는 항로의 중심지역이기도 했다. 150년동안 영국 포르쿠갈 상인들은 식수와 고기, 과일을 얻기위해 원주민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케이프타운에 유럽인이 정착하게 된것은 1652년이었다. 해안가로 이어지는 주요 수로는 암스테르담의 운하이름을 본따 헤랭라흐트라 칭하게 했다. 1680년대 식민지는 수백명의 프랑스 개신교도 망명자들이 찾아오면서 한 층더 북적 거리게 되었다. 1806년 프랑스와 경쟁하여 영국이 케이프타운을 점령하게 되었고 인도무역을 위한 해상 공급지가 되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열리면서 케이프타운의 중요성은 급격히 낮아졌다. 19세기 후반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다름아닌 세실 로즈다. 

세실로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주 출신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선천적으로 병약한 체질이었다.[1] 세실 로즈가 17세가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기후가 좋은 남아공에 로즈를 보내어 요양토록 했다. 건강을 되찾은 로즈는 동생과 함께 킴벌리에서 곡괭이를 휘둘렀다. 당시, 남아공은 광산 채굴이 한창이었다. 세실 로즈는 다이아몬드를 채굴하여 얻은 자금으로 다이아몬드 채굴권에 대한 투기를 하거나, 채굴장에 양수 펌프를 대여하여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 여기에다가, 런던의 재벌 로스차일드의 대출도 받아, 1880년에 "드비어스 광산 회사"[2]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거의 모든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배하였으며,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90%를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로즈는 드비어스 광산 회사를 통하여 트란스발 공화국의 광산 사업에도 진출하여 세계 최대의 광산 재벌이 되었다. 아울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철도·전신·신문 업계도 장악했다.

세실 로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1880년, 케이프 식민지 의회의원, 1884년 케이프 식민지 정부 재무장관이 되었고, 1890년에는 마침내 총리에까지 올랐다. 그 동안 로즈는 식민지인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고 대가로 광산의 이권을 얻어내었다. 1889년 본국인 영국 정부 인사를 매수하여 식민지에 대한 치안권·통치권을 가진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BSAC) 설립 허가를 따내기도 하였다. 1894 년 세실 로즈는 BSAC을 방패로 내세워 원정군을 아프리카 각지에 파견, 영국 본토의 4.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빼앗아 BSAC의 지배하에 두었다. 회사가 정복(?)한 이 땅을 정복자(?) 로즈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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