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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인도유럽어족

by 링마이벨 2017.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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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유럽어족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라틴어, 그리어, 고대 페르시아어 , 유럽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1813년에 처음으로 인도인 윌리엄 존스는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말을 처음 으로 사용했다.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알바니아, 아르메니아, 슬라브, 발트,게르만족, 켈트족, 섹슨족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봄

전세계 25억명의 인구 즉 세계 인구의 절반이 현재 인도유럽어족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들 언어의 공통된 조상이 스키타이족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히타이트족의 생성기원을 한번 살펴보자! 기원전 18세기라고 한다. 아나톨리아 아마도 지금의 터키라고 추측한다. "히타이트" 라는 낱말은 구약성경의 "헷 사람들(sons of Heth, 헷 족속)"[2]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아나톨리아에서 히타이트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처음에 이들을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와 동일시하였다. 현재는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인이 하투샤를 수도로 한 히타이트 제국(기원전 18세기경 ~ 기원전 1180년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신히타이트 도시 국가들(기원전 1180년경 ~ 기원전 8세기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식별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기원전 14세기 힛타이트 제국의 영토란다. 기원전 18세기경, 쿠샤라 왕 아나타스가 카파도키아 고원을 정복하였다. 히타이트 고왕국(古王國)의 조상은 라발나스인데, 그 아들 하투실리스는 하투사스를 수도로 정했다. 무르실리스 1세(Mur-silis Ⅰ, 기원전 1624 ~ 기원전 1594?)는 북시리아를 정복, 바빌론을 공략했다. 신왕국의 시조는 투드하리야스 2세로서 수필룰리우마스 1세(Suppiluliumas Ⅰ, 기원전 1380 ~ 기원전 1340?) 시대에 히타이트의 판도는 가장 커졌다. 히타이트인은 소아시아의 지배를 강화하여 미탄니를 속국으로 하고, 북시리아를 세력 아래에 흡수, 이집트 다음가는 대국이 되었다. 무와탈리스는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의 군대와 카데시에서 싸워서 격퇴했다(기원전 1286). 하투실리스 2세는 이집트와 화약(和約)을 맺어(기원전 1269) 오리엔트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동편에서는 아시리아에게 압박되고, 소아시아 서부에서는 프뤼기아가 대두하여, 그리스계 해상 민족의 침입으로 기원전 1180년 히타이트는 멸망했다. 결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영토를 제국의 지배아래 두게 되었다.

결국 이영토를 두게된 이유는 청동기 문명을 토대로 바퀴를 이용하여 정복전쟁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독일이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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