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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어떤 인생

by 링마이벨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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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것을 한번 되돌아보게 한 영화로

우연히 맬 지나다니는 광화문 도보길에 우연히 있던 2개의 소극장에  우연히 X-mas eve날 보았던 영화

일본원작이어서 그런지 일본의 일상이 영국으로 넘어간 느낌, 얼굴은 영국이지만 난 일본의 전형적인 영화로 생각해서 그런지 중절모 쓴 노익장의 일본이야기처럼 들렸다.  맨유경기에 나오는 이야기들 에버튼, 런던 그 동네로 바뀐것 뿐 아마도 동경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비춰졌다. 

삶의 전환점이 바뀌는 것은 삶이 유한하다고 깨닫는 순간부터 그 시간 이후의 한 사람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그 간단한 명제의 영화로 나의 삶이 시한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유한하다는 인식하면서부터 내가 해야할 것들이 빨라지고 무언가를 하고싶고 해야 한다는 그 강박이 한편으로는 인생을 가치있게 만든다는 그 흔한 삶의 금언이 실천되는 것을 작은 공원을 통해서 보여준다. 내 주변에 나의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 그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정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잔잔하게 그의 걸음걸이처럼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삶이 가진 그 의외성이라는 것, 가끔 삶이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 고정된 내 주변의 삶으로부터가 아닌 생각치 않은 사람들이 나의 삶을 걱정해주고 염려해주고 공감해주었다는 그 사실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이 드는 것은 나 또한 얼마 안되는 삶에서 내가 느껴왔던 사실인것이다. 

어찌 보면 의미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직장이라는 곳, 그 무덤덤한 장소가 점차로 나의 삶의 하나의 지표를 만드는 의미있는 장소로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항상 소중하고 넘 사랑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심지어 가벼워지고 가벼이 대하여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평생 같이 만나고 살을 대고 살지만 감동은 차치하고 무시하고 진정 그 의미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의미 없이 서로를 대하는가 보면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해 지키기에 혈안이 되다 보니 진정받는 사람은 그 소중함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그 고마움을 모른 것 같았다. 이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지금 너무 아프시지만 삶의 마지막 기로에서 혼자 애쓰시게 내버려 두고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삶도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묵직해서 너무나 일상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난다. 

우리가 영어에서 평생 배웠던 too~to 문장으로 너무나 중요해서 너무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이영화는 too casual to pass by~~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영화다. 

어떤 인생에 대해서 그 어려운 고백을 듣고 나 옆에서 눈물 흘려줄 사람이 그 진솔한 고백을 들어줄 사람이 두 명 나온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 

죽기 전에 죽으려 했던 모든 수면제를 대신 받고 모든 욕망을 경험하게 해 주었던 남자와 집에 가야 하는 그 시간에 영화와 시한부의 삶 이야기, 아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던  여자

누가 옳고 그르고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는 둘 다 중요한 사람들로 이야기하고 싶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기쁨과 환희 그 마지막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쾌락인지 아니면 삶의 중요한 시한부 삶을 이야기해 주고 잔잔하게 들어주었던 사람 나의 영화를 같이 볼 그 시간을 내어준 사람, 나의 일상을 더 꽉 차게 채워준 사람 이것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보면 그 남자와 여자는 모두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게 공감을 해준 사람들이다. 아마도 영국보다 일본이라면 더욱더 문화적인 배경과 비슷하지만 나는 영국이 어떤지 몰라 아 저건 일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간에 좋은 영화다.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차가움은 어찌 보면 뜨겁다는 것에 반대가 아닌 가장 뜨거울 수도 있음을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그 중간의 회색지대에 대부분 몰려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보면서 거꾸로 더 불안해졌다. 적당히 중간영역에 있는 사람들 사람들 대할 때, 또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너무나 온정주의 적인 것도 완벽하게 이성적이지도 않은 사람들 말이다. 적당히 또 적당히 모든 것을 적당히 사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인정도 적당히 노력도 적당히 삶도 적당히 그냥 적당히 살다 갈 것 같은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 크다. 인생에 한번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할때 가슴으로 대해본 적이 없는 나의 폐허, 나의 황무지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 황무지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인연이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생 3번 만났지만 3번째는 나이 들고 힘들어하는 삶의 구간에서 보았던 마지막 만남으로 기억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양을 원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양에 있지 않고 그 깊이라는 것에 존재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평생 같면서도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가 있고 단 한번 아니 맬 직장에서 본 그 흔하디 흔한 관계에서 그 사람의 진정성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도 있는 거이다. 생각해 보면 보석 같은 사람들이다. 나의 가치를 알고 나의 가치를 그 깊은 속성을 이해해 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경관이 두 명은 인생이 나온다. 아마도 아버지의 암투병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임을 맞이한 아들과 혹시마지막으로 그네를 탈때 조치를 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는 후회를 했던 경관의 두삶은 대비된다. 남이지만 너무나 즐거워 하는 것같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두고 볼 수 없었던 경관과 가끼이에서 전혀 그 삶을 보지 못했던 아들의 이야기인데 경관은 오해가 풀렸고 아들은 평생 마음의 빛을 가지고 갔을 것 같다. 아버지가 거울을 보면서 아들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이 결국은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아들을 너무 소중하게 키운 탓에 결국은 그 소중함이 아들을 저리 만들었던 것 같다. 남은 직업적인 소명인지는 몰라도 남의 안색을 잘 들여다 보게 되는데 아들은 한번도 아버지를 진정으로 대할 수 없었음을 그도 직장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이길 수 없었음을 아마도 아버지의 안색을 살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멍하니 자막 올라가는 것까지 다 보고 영화관을 나왔다. 그냥 괜히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아 불도 늦도록 켜지고 그 자막에서 나는 저 많은 사람들이 영화 제작에 관여했는데 나는 몇몇의 사람만 기억하면서 극장문을 나선다. 우리의 삶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같이 자막도 많은데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는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문을 나온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고 나의 일상에 그 틈 안에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그 삶들을 같이 포함시켜서 같이 살아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게 나의 삶이라면 내가 주인으로 그 삶에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나의 소중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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