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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종교에 관한 사고방식이었다.

by 링마이벨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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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종료가 하나의 지도원리가 아니라 버팀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을 속박하는 일은 없었다. 강력한 지도원리를 갖을 수도 있지만, 자기와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로마인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전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 종교에 인간의 전부를 내어 주진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종교보다 인간이 먼저 라는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단순히 믿는 신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인이 그 누구보다도 창조한 것중 좋게 평가할 수 있는것은 다름 아닌 법률이다. 종교는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서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라면 법률이라는 것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성을 위해 눈을 뜨도록 했다.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윤리도덕을 바로 잡는 역할을 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철학에 그 역할을 요구했다. 철학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인간의 행동 원칙을 바로 잡는 역할을 

종교에 맡기 유대인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로마인 

이것을 보면 이 세민족의 특징이 떠오를 것이다. 

권력이란 거칠고 우락부락한 형태로만 행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인것이다.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이 아닌 가장 자연스럽고 새로운 개혁안에 대해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점은 다름아닌 존중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일까? 

로물루스, 누가, 툴루스, 마르티우스 이 모든 왕들의 특징은 전쟁후 동화정책에 기인한다. 이민족과의 전쟁후 모든 적대국의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노예로 대우하는 것이 아닌 같은 민족으로 동화시키려 한 것이다. 그럼 초기에 어떻게 그러한 동화정책이 가능했을까? 문화적 자존감 또는 자신감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자신감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 그건 아마도 정신적 자신감이 월등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로 로마인은 그때 원래 정착했던 로마인의 피가 아니라 '라틴계 로마인" "사비니계 로마인"등 이민족 출신의 왕들이 로마의 왕을 이어갔고 오로시 '로마화'하는 방식을 이어갔던 것이다. 로마가 성급하지 않았던 이유는 로마는 아직 힘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세번째로 로마가 자리를 잡았던 일곱언덕은 어찌 보면 각언덕에 각기 다른 인종의 뿌리들이 살았고 언덕의 평지가 좁고 많은 사람들이 살았기에 필연적으로 배수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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