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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roken

명품

by 링마이벨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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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비를 좋아한다. 소비를 안해도 밝은 불빛, 깨끛한 복도, 유리알 처럼 빛나는 진열장, 흰 장갑을 낀 판매원, 난 왜 명품에 난 에르메스에 열광하나? 현실의 우울함 현실에 비참한 생각이 들때 그 복도를 걸어간다. 사지 않아도 이미 난 구매를 원하고 열망하니 난 성경의 비유에 의하면 "난 산거나 다름없다." " 난 이미 구매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명품이 명품의 가치를 지닌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옷이 구두가 핸드백이 그와 어울린다는 것은 중요하지않다. 원래는 누구나 다 어울린다고 구매하는 것이니까? 그 어울림의 이미지는 아마도 광고가 아니면, 우리가 대입한 인용이 우리가 인용한 허상이 나에게 투영되고 투영한다는 거짓 이미지로 품질이 좋다는 논리로 아니면 커머셜이라는 상품광고를 백년넘게 TV를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보아온 무의식이 의식인지는 몰라도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자본이 대치되는 개념중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단면이 명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왜 그렇게 비싸고 왜 그렇게 도도해 보이며 왜그리 선택적인지에 대해서 구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단지 서사모아의 떨어지고 잘 모르는 섬처럼 존재하려고 하는데 끊임없이 일상으로 떨어진다. "명품은 많이 보이면 명품아니다라는 나의 인식과 어울려 누구나 다소비하고 가지고 있으면 아니다."라는 나의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항상 줄을 서고 항상 사람들을 줄을 세운다. 명품이 그렇고 APPLE도 아파트 견본주택 구경하는 것도 명품이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리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추운겨울이나 더운 여름에 대책없이 길에 줄을 세운다. 무상급식의 줄도 아니고 구걸의 줄도 아닌데 말이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영악해지고 마케팅이 얼마나 그 자본주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하고 영악한 행동을 주저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명품은 나의 소비하려는 열망에 비래하여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한 켠에서는 끊임없이 광고를 통해서 선망이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 하면서 백일몽을 꾸게 하면서 뒤로는 잔인한 폭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상상을 하면서 가끔은 쇼윈도우에 진짜 사람을 옷을 입게하고 마네킨처럼 서 있게 하면서 말이다. 

마스크를 줄서서 기다리는 것은 자본주의 폐단이라고 공산주의라 비난하는데 명품매장의 줄이 코로나임에도 줄서는 것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것은 브랜드 홍보처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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