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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roken

빠름의 미학

by 링마이벨 2021.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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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의 13.9억원의 중국과 비교해 54백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미국면적이 980만제곱킬로미터라면 우리는 10만제곱으로 미국 크기의 1/100에 해당한다.아마도 말을 기준으로 달리다 보면 작은나라에서는 하루에 절반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인지? 빨리 움직일수 있던 반면 중국이나 미국은 민족도 많지만 절반도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여유있고 느긋해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하루에 불가능하니까? 우리는 유난히도 민족적으로 '빨리빨리'를 이야기한다. 왜 우리는 빨리 빨리 할까? 기다리지 못해서 그러면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그 빠름이 반도체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네트워킹이라는 인프라를 누구보다도 빨리 서울이 빠른도시 정보도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빠른걸 좋아해서 아니 어느순간 빨라진건 아닌지 조상대대로 빨랐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말이다.

식사문화에서 보면 한식이라는 것은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식단이라고 생각한다. 원재료부터 채취하여 날것으로 때로는 쌂고 데치고 가장 자연스러운 조리를 하고 대가집 찬은 종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마도 99칸에서 식사하기에 진수성찬이라 이야기 할때 우리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상을 이야기한다. 신분제사회이다 보니 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신분제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많은 토지를 소유하다보니 대가집의 밥상은 화려했겠지만 상대적으로 할일이 많았던 하인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운영할려면 빨리먹고 늦게 까지 일해야 하는 힘든 노동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유난히 욕심이 많았던 일부 사람들 때문만이었을까? 조선시대 말에 극심하게 신분에 매매가 많았던 것을 보면 돈을 주고 신분을 사게 돼면 거기에서 부의 유출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부를 억척스럽게 모아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유달리 돈 버는 것에 경시하는 문화는 바로 이때 형성 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진짜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팽창된 Society에서 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란 바로 차별화 였을 것이다. 돈으로 산 양반들 대부분의 그런 사람들과의 차별화는 서원이라는 하나의 체계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학문적 업적을 만들려고 했을거고 반면 사대부나 신흥귀족 부자들은 새로운 가치체계를 숭상햇을 거고 거기에 따른 갈등은 학문의 신구가 아닌 철저히 경제학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서로 차별화 할려는 가치관의 대립이었으니 죽고 죽이고 매건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경제학적인 base를 지키기 위해 둘다 부를 일구려는 노력은 한층더 가속화 돼다보니 손과발이 돼었던 그 아래 사람들은 엄청난 노동시간과 밤낮으로 사익추구를 위한 도구화돼다보니 빨리 빨리를 안할 수 없는 입장이 돼었을 것이다. 

2번째 전쟁이엇을까? 936회의 외침 이건은 상대적으로 식민주의 사학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도 이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기준으로 이러한 토대를 이야기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돼지 않는다. 전쟁으로 모든 원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기준도 애매모호하지만 우리가 전쟁엣 보는것은 병자호란, 임진왜란, 6.25전쟁, 동학혁명 등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이데올르기를 지키려는 이념전쟁이었다. 병자,임진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는 의리를 지키려는 어찌보면 우리의 전쟁을 외침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상적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단순히 936회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상당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던지 아니면 최소한 자주적 mind는 아니었을 듯 싶다. 우리는 위기때 기회를 만든 민족이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통일된 신라로 후백제, 후고구려가 고려로 다시 조선으로 대한제국어서 일제강정기로 대한민국으로 정치적 주체가 바뀔때 남이 한것은 일제강정기와 사실은 군대 개념으로만 본다면 해방후 들어온 미군의 군대가 해방이후 줄곳 대한민국 남의나라에 우리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것을 완벽한 자주독립은 아직까지 없는 것이다. 전세게에 미군이 주둔하고 잇는 나라들을 보면 완벽한 자주독립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우리가 미국 SF에 해병대 연대를 주둔할 수 있을까? 나는 CHANGEABLE하는 전환기에 정권이 인수될때 거기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놈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제강정기 때 한일 병합전 경제적 자주독립을 못하게 했던 1180년에서 1910년 이미 우리는 일본에 경제적으로 모든 자주권을 상실했을때 이미 나라를 잃고 모든 경제권 지방에서 서울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그 시기에 주목해보자! 일본은 차근 차근 부산동래는 이미 한 나라였고 거기서 전국으로 논밭 도시 인프라 국가적 인프라를 차츰 차츰 좀먹었을때 관리들이란게 개방만 생각했지 거기에서 생기는 이익들을 병탄하고 나라를 넘기는제 일조하고 1910년대 나라를 다 넘기고 지그들은 가족이 일본으로 관광유람을 한 단체사진을 봐라! 사람새끼들도 아니지 나라팔고 가서 유람하고 자식들은 일본으로 유학가고 만든 기업이 대한민국의 대기업으로 존재하지 않는가? 내자식은 공부하는것이 보람차고 남의 자식은 일할때가 이러한 가치는 새마을 운동으로 전시시대의 가치관 슬로건이 다시 경제로 유입돼고 실생활에 대중화되고 부지런함이 미덕으로 숭상돼었으리라! 결국 전환기 우리는 이익을 편탈하려는 사람들로 왜냐하면 전환기 SHIFT가 부를 일굴 수 있고 정권도 획득 할 수 있는 어찌보면 힘 적게들이고 모든것을 이룰수 있는 텃밭이라고 생각하게끔 했던 것이다. 지금도 정권이 바뀔때마다 엄청난 욕심의 쓰나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한 방법보다는 빠르고 확률이 많고 그 전환기에 엄청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TIMING을 누구나 기회로서 활용하다보니 빨리 빨리 변화의 시기에는 빠른 판단이 필요해진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개념으로 보면 "잘 생각해보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표현이 더 좋은데 말이다. 빠름으로 부를 일군 사람이라면 자기의 사람중 느린 사람을 용서하거나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빠름이란 생존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빠르지 않으면 어느나라보다 더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부의 고속 엘리베이터에 저해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경제적 원칙에 입각한 소수 지배자의 지배 논리가 만들어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 빨리빨리 최근 일제 강정기 이후 60~70년을 집중해 진행하다 보니 이제는 긍정적인 system으로 반도체로 전화기로 무선통신으로 가정이 wifi로 하나로 연결돼고 가족간에 지역간 회사가 더욱더 밀접해지게 돼고 우리는 서울이라는 지여공동체의 단일 거대 커뮤니티가 하나의 가정처럼 조직화가 실현돼고 있는 것이다. Hardware의 발달로 우리는 엄청난 부를 일구었고 코로나이후 그 빠름이 세계적으로 숭상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 문화는 일제 강정기 이후 소멸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일제가 억압하고 찬탈한 문화때문이었다면 지금은 드디어 경제적 속도가 그 빠름이 software를 누르면서 반도체, 배 최고의 수출국이 돼었다. 그런데 한 예가 될ㅈ 모르지만 아이들은 거의 아이폰을 쓰고있다. 왜냐하면 삼성이 잘 터지고 기기는 좋지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 미적가치와 그 핸드폰 안에 있는 폴더 시스템이 너무 아름답고 상승가치가 많은 반면 우리는 아직도 전화기만을 잘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과 삶이 기계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살율을 보이고 있고 우리는 점점 정신과 현실사이에서 많은 gap을 따라잡지 못하고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잇는 것이다. 

속도도 하나의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엄청난 속도를 경험한 이에게 300km를 늘상타고 이동하던 이가 70km속도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메일 하나를 속도 생각안하다가 갑자기 그림 하나받는데 스트리밍받는데 자리를 뜰 정도로 기다릴 수 있을까 ? 결국 속도는 속도로서 앞만보고 달리다 보니 주위를 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난이었다면 빈곤이고 무지였었다면 이제 속도가 주위를 볼 수 없게 하고 점점 개인을 고립화 시키고 그 고립에서 점점 개인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돼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문화적인 만족 없는 속도 일변의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사회에서 최대의 사회적 붕괴요인으로 나는 속도를 생각한다. 이 속도가 이 자극이 중독이 된 지금 이빠름은 외부문제가 아닌 내 뇌가 속도를 인식하고 있고 뇌가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내 뇌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나의 뇌에 지배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속도라는 전제자 앞에서 중독에서 가끔 아주 느린 무언가를 해서 평형을 잡아 줘야 한다. 그 평형이 나는 바로 느린 정신적 활동 과거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작업이 병행 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뇌를 위해서 나의 느림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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